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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처치

의료기기 해킹과 응급처치: 생명을 지키는 장비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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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응급처치를 “몸으로 배우는 기술”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의존하는 장비들—자동제세동기(AED), 심장박동기, 인슐린 펌프—이제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인터넷에 연결된 작은 컴퓨터다.
그리고 그건 곧 해킹될 수 있는 기계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때는 영화에서나 보던 얘기였다.
“해커가 심장박동기를 원격으로 조작해서 사람을 죽인다.”
오버스러운 음모론 같다고?
그럼 지금 AED(자동 제세동기) 와이파이로 펌웨어 업데이트되는 걸 보면 의료기기 해킹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응급처치 장비도 예외는 아니고, 그 장비가 당신의 심장을 실시간으로 ‘관리’ 중이라면?
관리인지 조작인지 모를 그 경계가 지금 현실에서 흔들리고 있다.

의료기기 해킹과 응급처치: 생명을 지키는 장비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의료기기 해킹, 정말로 가능한가?

2017년, 미국의 보안 연구자들은 St. Jude Medical의 심장박동기 시스템에서 치명적인 보안 결함을 발견했다.
해당 장비는 무선으로 상태를 전송받고 업데이트를 수행하는 기능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공격자가 신호를 가로채거나, 심장 리듬을 교란시킬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FDA는 전례 없이 보안 패치를 강제 권고했다.
그리고 수천 명의 환자가 기기 교체 또는 재설정을 받았다.

이건 SF 영화가 아니다. 공식 기록이다.


응급처치 장비,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나?

AED 같은 응급처치 장비 대부분은 현재 독립형 오프라인 장치다.
특히 공공장소에 설치된 AED는 전원만 연결되어 있을 뿐, 인터넷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의료 기관에서 사용하는 고급 장비는 다르다.
일부 병원은 AED, 생체 모니터링 시스템, 인슐린 펌프 등을
클라우드 기반 원격 관리 시스템에 연결해 실시간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이러한 연결이 보안이 완벽히 갖춰지지 않은 채 도입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2020년 독일에선 병원이 랜섬웨어에 감염되어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응급환자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이 사건은 유럽 사이버 보안사에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간접 사망”이라는 씁쓸한 사례로 남았다.


해킹 가능한 장비들의 리스트

다음은 보안 전문가들이 실제로 위험성을 지적한 의료기기들이다:

  • 스마트 AED: 원격 배터리 확인 및 펌웨어 업데이트 기능 포함.
    → 취약한 암호화, 무단 접근 시 응급 상황에서 장비 무력화 가능.
  • 스마트 인슐린 펌프: 모바일 앱을 통해 혈당 조절.
    → 악성 앱 설치 시 과다 투약 유도 가능.
  • 심장박동기 및 제세동기(ICD): 무선 조절 기능 탑재.
    → 전파 교란 또는 명령 신호 조작 위험.

의료기기 보안에 대한 제도적 대응

미국 식약처(FDA)는 2019년부터
모든 의료기기에 대해 **보안 설계 요건(Premarket Cybersecurity Guidelines)**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 사항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 위협 모델링
  • 소프트웨어 패치 계획
  • 사용자 인증 시스템
  • 암호화된 통신 프로토콜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내부에서도 보안 점검과 해커 시뮬레이션을 위한 화이트 해커 팀 구성이 확산되고 있다.


일반 사용자에게 이게 왜 중요할까?

“우리 아파트에 있는 AED는 인터넷이랑 연결 안 됐는데?”
맞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용, 대형시설용, 스마트 헬스케어 디바이스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시대인 만큼,
응급처치 장비 역시 점점 더 디지털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대부분의 공공 AED가 오프라인으로 작동하지만,
병원용이나 일부 스마트 AED는 이미 네트워크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일상 속 AED도 원격 관리 시스템에 연결될 수 있다.
그 말은, 우리가 평소처럼 지나치던 그 장비가 언젠가는 사이버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응급처치를 배우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기술이다.
하지만 그 기술이 기계를 기반으로 한다면,
그 기계를 이해하고 지킬 수 있는 지식도 함께 배워야 한다.


결론: 응급처치의 미래는 ‘기술 이해’와 ‘보안 감수성’ 위에 있다

우리는 앞으로 기계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시대에 더 깊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 기계들이 신뢰할 수 없게 될 가능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응급처치 교육은 이제,
단순히 붕대 감는 법이나 CPR을 넘어서
디지털 장비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
그리고 그 장비들이 왜 위험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까지 포함해야 한다.

기계는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계를 지키는 건 여전히 우리의 책임이다.


📎 출처 및 참고자료

  • FDA. Cybersecurity in Medical Devices: Quality System Considerations. (2019)
  • Rapid7. Medical Device Security: A Data-driven View. (2022)
  • IEEE Access. A Survey on Cybersecurity in Medical Devices. (2021)
  • WHO. Digital Health Guideline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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